월간 중부기록

찌는 듯이 더운 여름, 냉장고에 반찬은 없고, 새로 요리하기에는 귀찮고.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학창 시절에 먹던 급식입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같은 영양소가 고루 포함되고, 굳이 내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던 학교급식의 소중함이 이제서야 와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초기 학교급식의 모양새는 어땠을까요? 8월의 「월간 중부기록」은 학교급식을 주제로 이야기합니다.

| 소장기록 한 장면

1964 교동국민학교 급식
1964년 교동국민학교 급식시간

1964년 교동국민학교의 급식 시간 모습입니다. 사진 속 가운데에 앉은 밝은 옷을 입은 어린이는 손에 빵을 들고 있습니다. 1953년부터 구호급식이 시작되어, 미국의 구호단체 CARE로부터 원조받은 옥수수가루로 만든 옥수수빵, 옥수수죽이 급식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몇 어린이만 빵을, 다른 어린이들은 챙겨온 도시락을 먹고 있습니다. 이는 한 반에 배당되는 빵의 양의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날짜마다 차례를 정해 빵을 나눠주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차례가 오지 않아 빵을 받지 못한 어린이는 시무룩해졌다고 합니다.

70년대 시골 국민학교 빵 먹는 날

| 빵, 밀크 그리고 야채슾

1968년부터 문교부의 예산 일부 지원 아래 전국에 17개 학교급식 시범학교가 운영되었습니다. 학교마다 조리시설을 구비하고, 영양사, 조리사를 배치한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급식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기존의 무료였던 구호급식과는 다르게 일반급식 대상자는 월 50원, 보충급식 대상자는 월 20원을 내고 급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일반급식은 약 1600원, 보충급식은 약 650원을 달마다 내는 셈입니다. 보충급식은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선정하여 혜택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70년대 국민학교 빵 급식
1968년 재동초등학교 영양급식 운영계획서
1968년 재동초등학교 영양급식 운영계획서 (5번째 장)
1968년 재동초등학교 영양급식 운영계획서 (6번째 장)
1968년 재동초등학교 영양급식 운영계획서 (6번째 장)

1968년 재동초등학교의 영양급식 운영계획서에 따르면, 당시 학생들은 빵과 우유를 기본으로 하고, 야채 수프, 마카로니 수프, 된장국을 곁들인 식사를 했습니다. 운영계획서에는 메뉴마다 들어가는 음식 재료의 양과 칼로리가 적혀있습니다. 옛 급식의 추억의 맛이 그리우신 분들은 이 재료표를 참고해서 추억을 재현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 5가지 기초식품 노래

5가지 기초식품 노래
5가지 기초식품 노래 - 산바람 강바람
5가지 기초식품 노래
5가지 기초식품 노래 - 하얀마음 파란마음

1970년대에는 골고루 영양소를 챙겨먹는 것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어린이들에게 5가지 기초식품을 주제로 한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재동초등학교 어린이들은 기존 동요에 새로 가사를 붙인 노래 세 곡을 배웠습니다. 그 중 동요 ‘하얀마음 파란마음’에 맞춰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명랑하고 건강한 가족식사
시간 되면 웃음꽃 피죠
아빠는 엄마 솜씨를 칭찬하지만
엄마는 웃으며 말씀하셔요
다섯가지 기초식품 덕분이라고

1군은 흰자질 고기 콩 달걀
2군은 비타민 무기질 채소
3군은 탄수화물 곡류 감자류
4군은 칼슘군 우유와 멸치
5군은 지방분 뻐터 기름들

옆집의 영이는 콩을 안먹고
뒷집의 철수는 고기만 먹죠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골고루
국수도 고기도 또한 채소도
뭐든지 안가리고 맛있게 먹죠

| 1977년 급식 빵 식중독 사건

1977년 9월에 학교 급식으로 제공된 “슈크림빵”을 먹은 서울시내 52개 학교 초등학생 7,870여명이 식중독으로 고생하거나 사망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사고는 그 해 연말 언론사들이 선정한 10대 뉴스에도 포함될 정도로 큰 논란을 야기한 사건이었습니다. 식중독이 발생된 사유는 계란과 우유가 들어간 슈크림빵을 섭씨 25도의 상온에서 50시간 이상 방치하였다가 화물트럭에 실어 학교에 배송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일시적으로 급식이 중단되었고, 이후로 빈곤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급식이나 사립학교 급식을 제외하면 학교 급식이 전면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1977년 급식 빵 식중독 사건
1977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오전에 도착한 급식 빵을 교실로 나르는 모습. 오른쪽은 식중독으로 쓰러져 입원한 어린이들 [출처: 동아일보 1977년 9월 17일 자]

| 8090 급식 풍경

1982년 매동초등학교 초기 학교 급식실
1982년 매동초등학교 초기 학교 급식실
1982년 매동초등학교 초기 학교 급식
1982년 매동초등학교 초기 학교 급식
1982년 매동초등학교 초기 학교 급식실
1982년 매동초등학교 초기 학교 급식실
1985년 재동초등학교 급식 질서있게 급식통 운반
1985년 재동초등학교 급식 질서있게 급식통 운반

1981년 학교급식법령이 제정되어, 학교급식 제도가 점차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도시의 급식 학교는 빵 제조 시설을 이용하여 빵 급식과 밥 급식을 병행하였습니다. 학교급식 시범학교 제도가 이어지던 1990년에는 전체 초등학교의 12.1%인 765개의 학교에서 급식을 실시하였습니다.

1990년 교동국민학교 급식
1990년 교동국민학교 급식
1990년 교동국민학교 급식
1990년 교동국민학교 급식
1990년 강릉 성산 국민학교의 점심시간

| 관련 소장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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